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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영성 - 생각(1)
  관리자
 
     
  4차원의 영성 - 생각(1)
부정적인 생각의 ‘뇌’를 과감하게 수술하라!

 4차원의 영성은 성경적 ‘인간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즉,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숨’(생령)이 그 안에 들어온 순간 긍정적인 생각, 넘치는 믿음, 미래를 움직이는 꿈 그리고 소망의 말을 소유하였던 4차원적 존재였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통한 원죄와 그 원죄로 부터 시작된 스스로 저지른 죄들로 인해 저주받은 생각, 결핍된 믿음, 불안한 미래에 흔들리는 꿈, 그리고 절망적인 말의 굴레에 갇혀버렸다. 그 결과 4차원적 존재로 창조되었던 인간의 실존은 3차원적 존재로 추락해 버리고 말았다.

 4차원의 영성은 3차원적 현실에 갇혀버린 인간 실존의 ‘존재적 변화’ 또는 ‘차원이동적 회복’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분명히 3차원적인 공간에 살면서 3차원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보이는 것만 믿고, 현실의 틀에서만 꿈꾸고, 들리는 것만 말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그 기초로 하는 기독교의 신앙을 통해 4차원의 영성을 회복한 인간은 이제 4차원적 세계를 침노하면서 이성을 초월하여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초현실적인 것을 꿈꾸고, 들리지 않는 것도 입술로 고백하는 존재로 자신의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

 ‘생각’은 4차원의 영성의 첫번째 요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을 이용한 생체실험으로 유명했던 독일의 나치군은 이런 실험을 했다. 그들은 실험 대상이 된 포로에게 먼저 자신들이 어떤 실험을 할지 미리 말해주었다. “너를 통해 할 실험은 인간의 팔목 동맥을 칼로 끊으면 얼마 만에 죽게 되는지 테스트하는 실험이다. 먼저 너를 실험대에 눕히고 눈을 가리고 양 손목을 칼로 베어내고 양 손에서 나오는 피는 양쪽에 있는 통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우리의 예상으로는 3시간 정도가 지나면 몸에 있는 피가 다 나와서 너는 죽게 될거다”라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실험은 시작되었고 정말로 3시간쯤 지나자 그 실험 대상은 죽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사람은 팔목도 베이지 않았고 피도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죽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눈을 가린 후 그의 팔을 그은 것은 칼이 아니라 차가운 얼음이었고, 양쪽으로 ‘똑’ ‘똑’하며 떨어지는 소리는 수도꼭지를 조금 틀어놓은 것이었다. 사실 그들이 한 실험은 인간의 생각과 심리가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연구하는 실험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은 죽었을까? 그것도 그들이 예상한 시간에 말이다.

 인간에게 ‘생각’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피를 흘리면 3시간 만에 내가 죽는다’라는 생각에 지배 받게 되자 사실은 몸에서 피 한방울 안 흘렸는데도 거짓말처럼 그 시간이 되자 심장이 멎어 버린 것이다. 사람이 뇌에 상처를 입거나 종양이 생기면 몸의 일부 혹은 전부가 마비되어 못쓰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현대의 뇌의학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뇌속의 종양을 제거하나 상처를 치료하여 생명을 연장시킬 뿐만 아니라, 전신 혹은 반신의 불수를 회복시켜주는 기적과 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육신적인 뇌’의 문제보다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인 뇌’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잘못된 생각, 부정적인 사고,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철학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삶은 많은 낭패와 실망으로 무너져가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담겨있는 ‘뇌’는 과감하게 변화시켜 그 생각을 제거하는 ‘뇌수술’이 필요하다. 제거해야 할 가장 대표적인 부정적인 생각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다른 것들은 이 두 가지 생각의 원인이 되는 구체적인 요소들이다. 인생을 파멸케 하는 병적요소는 불안과 두려움이며, 그것의 원인은 바로 인간의 무능력에 대한 불안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부재이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제자들이 풍랑 앞에서 믿음 없이 환경을 바라보며 두려워하던 모습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의 전형적인 예이다. 제자들은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파도치는 환경에 두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 없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생각’인 것이다. 


김에녹 목사 henoch9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