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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영성 - 생각(4)
  관리자
 
     
  4차원의 영성 - 생각(4)
몸과 마음 파괴하는 분노의 생각을 제거하라!

 인생을 파멸시키는 병적인 요소 중에 또 다른 하나는 분노를 품은 생각이다. 요즘 사람들은 가정에서나 밖에서나 어디서든지 너무나 쉽게 분노를 나타낸다. 아마도 그것은 분노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분노는 자기 자신의 마음과 몸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지성까지도 혼미하게 만든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정신 신체 의학연구 개척자인 월터 캐논(Walter Cannon)은 인간의 뇌에는 ‘분노의 구름’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 구름이 뇌신경에 모이면 눈에 핏발이 서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며 말을 더듬게 되는 증세가 생긴다는 사실을 연구하여 분석했다. 그는 “분노를 내는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며 피가 위와 장기에서 심장, 중추신경계근육 등으로 역류한다. 소화기관의 기능이 중지되고 간에 저장되어 있던 당분이 유출된다. 그리고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어 충동적인 흥분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한 해부학자인 존 헌튼(John Hunten)은 “분노를 내는 사람은 자살하고 있는 사람이다. 분과 노는 남을 괴롭히기 전에 먼저 자기를 죽인다”고 말하며 분노의 파괴적인 힘에 대한 논문을 해부학회를 통해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가 끝난 후 토의를 하는 시간에 다른 의사가 헌튼의 논문을 강하게 비평하고 비난했다. 그러자 스스로 “분을 내지 말라”고 외쳤던 헌튼은 그 순간 분노해서 상대에게 대항하여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분을 내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그가 스스로는 분을 품다가 심장마비로 죽고 만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분노는 누구에게든 치명적인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다. 분노하는 것은 누워서 침을 뱉으면, 침이 자기 얼굴에 다시 떨어지듯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치게 되는 것이다.

 잠언 12장 16절은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아마도 “미련한 자가 분노를 당장에 나타낸다”는 말은 걸핏 하면 참지 못하고 성을 잘 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은 도무지 참을성 없이 그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버럭 내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미련하다고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옳은 분노이든 옳지 못한 분노이든 분노를 발할 때가 많다. 그러나 분노는 우리의 얼굴과 마음과 건강에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일본의 오사카에서 이런 실험을 한 것을 발표했다. 개를 묶어놓고 4시간동안 그 눈을 쳐다보며 몽둥이로 약을 올리며 때렸다. 당연히 개는 바짝 독이 올랐다. 만약 풀어 놓으면 죽일 듯이 결사적으로 덤벼들 정도로 약을 올리며 때렸다. 그 순간 주사기를 꽂아 개의 피를 뽑아내어 분석해 보니 피 속에 ‘시안’이라는 독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한 마리의 개에게서 나온 독은 80마리나 죽일 수 있는 양이었다. 이와 비슷한 실험으로 어떤 과학자가 사람의 ‘분노의 감정’이 얼마나 해로운 가를 밝히기 위해 실험했다. 분노를 내고 있는 사람이 내쉬는 숨을 액체질소로 급랭시켜 보았더니 노란색의 독소액체가 나왔다. 이것을 다시 계량화하여 1시간 분량으로 모아보았더니, 그러한 분노의 독소량이 무려 70명 이상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양이었다. 이처럼 분노는 자기도 죽고, 남도 죽게 하는 무서운 독(毒)이다. 혈기를 부리고 노를 발하고 미움을 품으면 스스로 온 몸에 독이 퍼져 너무나 해로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분노와 미움을 극복하셨다. 자신을 괴롭히고 조롱하는 이들을 위해 오히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미움과 분노를 이기신 것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들은 미움과 분노를 이길 수 있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 29:22).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김에녹 목사 henoch93@naver.com